한남오거리에서 시작해 응봉삼거리까지 이어지는 독서당길은 학구적인 이름만큼이나 유래가 깊은 곳입니다. 조선시대 과거에 급제한 젊을 선비들이 독서 휴가를 즐겼던 곳이라고 하니 이만 한 정취가 또 어디 있을까요.

 

한남동과 옥수동, 금호동, 응봉동, 행당동을 끼고 오르 내리는 독서당길. 채 10리가 안 되는 이 길 위에 서울의 다양한 모습이 숨어 있는 그 곳 소개합니다.

 


 

한남오거리에서 옥수동으로 향하는 초입. 독서당길의 시작, 혹은 도착점이기도 한 이곳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것은 팬케이크와 오믈렛을 주 메뉴로 한 브런치 카페다. 강남과 강북을 바삐 오가는 차들로 가득한 교차로를 지척에 두고도 더할 나위 없이 여유로운 사람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발걸음이 느슨해지는 풍경 옆으로는 꽃집이 자리 잡았다. 알록달록 작은 화분들이 꽃밭을 이룬 이곳은 꽃집 ‘취원’이다. 이곳에 자리 잡은 지 15년이 넘었다는데 그 오랜 시간 동안 늙지도 않았다. 옆에 새로 생긴 카페만큼이나 산뜻하다. 그 옆으로 샌드위치 집과 밥집, 타코 집이 바투 서 있다. 독서당길에 들어서서 몇 발짝 떼지도 않았는데 벌써 네댓 개의 카페를 지났다. 길을 따라 레스토랑과 디저트 카페도 이어진다. 하나같이 세련되고 이국적인 분위기에 가게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본래 주거 성격이 강했던 한남동에 상업공간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난 카페며 식당에 이곳 사람들도 놀라는 눈치다. 한남동에 터를 잡고 있던 기존의 명소들과 새로 생긴 분위기 좋은 카페들, 동네 마실 나온 듯한 여유로운 분위기. 독서당길이 포화 상태에 이른 삼청동과 가로수길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이유다.



 


독서당길을 걷다 보면 한남동이 ‘작은 국제도시’라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스쳐가는 목소리 중 우리나라 말보다 외국어가 더 많다. 공을 차며 지나가는 아이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나 귀를 기울여보았더니 영어도 아닌 독일어다. 독서당길 좌우로는 멕시코와 몽골, 인도, 이탈리아 등 11개국의 대사관이 자리 잡고 있다. 외국 주재원들의 자녀들을 위한 외국인 유치원과 학교도 모여 있어 하교 시간이 되면 다양한 인종의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기다리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한다. 어느 할리우드 영화 속에서 본 듯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니 금발의 한 학부모가 렌즈를 향해 손을 흔든다. 무척이나 친근한 제스처에 나도 모르게 이곳이 어디인지 잠시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독서당길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독특한 만남이다.

 


몇 개의 고개를 넘어 길 옆 풍경이 달라졌다 했더니 어느덧 한남동을 지나 옥수동이다. 옥수터널 옆, 서울의 3대 비구니 사찰 중 하나인 ‘미타사’는 지친 발을 쉬어가기에 좋은 장소다. 절 내에는 미타유치원이 있는데 놀이터 그네에 앉아 분홍색 원복을 입은 꼬마 아이들을 보고 있노라니 한여름 땀이 저절로 식는다. 여유가 된다면 옥정초등학교 뒤, 헌종의 어머니인 조대비의 생가와 쌍호정도 들러볼 만하다. 다시 걸음을 옮겨 옥수동 독서당터의 표지석도 읽어보고 금남시장에 들러 시장 구경도 하다가 응봉산삼거리에 이르니 독서당길 산책이 끝난다. 성수대교가 내려다보이는 응봉산 전망대에 올라보는 것도 추천 코스. 오르고 내리는 발걸음이 버겁다면 중간에 돌아가도 되고 쉬어가도 좋다. 3.7km,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거리. 동행이 있다면 더욱 즐겁다.

 


독서당길
● 한남오거리에서 옥수 방면으로 직진. 옥정중학교-옥수사거리-금호사거리-응봉삼거리까지 이어진다. 반대로 응봉삼거리에서 한남동 방향으로 길을 따라 직진해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