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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주말 제안] 나누고 싶은 좋은 말

 

 

어깨에 커다란 돌덩어리가 얹힌 것 같은 주말입니다. 게다가 토요일에는 흐려지고 일요일에는 전국에 비 소식이 있네요. 오랜 건조함을 가시게 할 반가운 소식이어야 할텐데, 하늘이 야속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축 쳐져있는 어깨에 힘을 주고, 마음의 위안이 될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 생각 없이 마냥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영화가 특효일 수도 있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창가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휴식이 되는 분도 있겠죠. 천진한 아이의 눈망울, 다 안다는 듯한 눈빛으로 곁을 지키는 반려동물, 뚝딱 차려낸 듯하지만 어느 것 하나 정성이 빠지지 않은 엄마의 밥상, 출근길 버스에서 만난 기사님의 반가운 인사, 어느새 돋아나 푸르름을 더하는 은행잎 등 소소한 행복을 주는 것들을 떠올려봤습니다.

그러다 지난 2012년 레이디경향 창간 30주년 기념으로 취재팀에서 제작한 특집 [귀한 이야기_ 명언집] 생각이 났어요. 회사 자료실에서 지난 29년의 레이디경향을 모조리 읽어가며 인터뷰이들의 감동적인 말을 찾아내던 기억이 새록새록합니다. 고생한 만큼 독자들의 반응이 정말이지 열화와 같아서 그 다음 달까지 충만한 보람을 느꼈던 추억도요.

당시 지면관계상 소화하지 못했던 내용을 포함해서, 지금 독자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대목을 골라봤습니다. 두고두고 다시 읽어도 좋을, 그리고 주변과 나눠도 좋을 귀한 이야기 일거라 자부합니다. 마음의 온기 잃지 않는, 주말 되시길!

 

 

 

 

여자는 나이가 들수록 운신의 폭이 좁아져요. 틈새를 노릴 수밖에 없죠. 나는 진행에 대한 욕심을 버렸어요. ‘MC 하던 사람이 쪽팔리게 어떻게 패널로 앉아있어이런 마음 비웠어요. 제가 조형기씨랑 같은 사무실이에요. ‘그래, 그럼 내가 여자 조형기가 돼볼게라는 얘기를 농담 삼아 했는데, 메인 MC만 보다가 패널로 앉아 있으려니까 처음에는 되게 이상했어요, 후배들이랑 앉아서 하는데, 처음에는 나도 모르게 진행을 하려고 하는 거예요. 창피하기도 하고 속도 상했어요. , 이제는 명절 특집방송에 MC가 아니라 심사위원 자리가 들어와(웃음), 그래 그럼 받아들이자고 마음먹었죠. 저는 그냥 잘 들어주는 MC가 되자 했어요. 예를 들어 ‘KBS 바른언어상을 받은 러브인아시아의 경우에는 프로그램 자체가 가슴 아픈 사연들이 많아요. 그 사연들을 잘 보듬고, 공감해주고, 눈 맞추고. 저는 일반인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참 많이 진행했어요. 일반인은 방송 나오면 긴장하잖아요. 편안하게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드리고, 생각나게끔 유도하고, 그게 제 역할인 거 같아요. 무엇이든 내 자리에서 몫을 다 하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편해요. 이제 나는 할 수 있는 일이 늘었어요. 이렇게 나의 40, 50대는 지나가겠죠. 내가 환갑이 되고 칠순이 됐을 때, 기력이 있다면 이순재 선생님이나 김영옥 선생님처럼, 정혜선 선생님처럼. 나도 그렇게 하고 싶어요. 인생이 황혼기에 접어들면 진짜 헌신할 수 있는 그런 일을 찾아서 하고 싶어요. 자식들한테도 너네 대학까지만 공부시키고 그 이후에 엄마는 엄마 인생 살거야그랬어요. 지금 초등학생인데, 미리 세뇌시키는 거야(웃음).”

- 20081월호 장기자 정기자 도발인터뷰 8 - 가늘고 길게 가는 삶의 가치, 박미선

 

 

제가 남보다 돋보여서 버틴 게 아니라 할 말이 많아서 버텼어요. 특별한 장기나 재능이 있었던 것도 아니에요. 방송에만 나가면 왜 이렇게 키가 작으냐, 가발은 언제부터 썼냐, 이혼은 왜 했냐, 왜 재혼했냐, 왜 또 이혼했냐, 이런 것만 물어보더라구요. 묻는 말에 대답을 안 할 수가 없잖아요. 그거 대답하다보니 30년이 갔어요(웃음). 다른 사람들 같았으면 화내며 피했을 질문에 저는 솔직하게 대답을 했거든요. 저의 핸디캡과 인생의 상처가 지금까지 저를 버티게 한 것 같아요. 웃고 싶은데 웃을 일이 없고, 혼자 앉아서 웃을 순 없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면 같은 말이라도 더 재밌게, 더 우습게 말했어요. 사람들이 웃는 걸 보고 나도 웃으려고. 결국 내가 웃으려고 웃기는 거예요. 웃음을 자급자족 하는 거죠. 그렇게 해서 살아남은 것 같아요. 코미디언들이 대부분 그런 서글픔이 있어요. 어렵게 살았다든가 괴로운 일이 많았다든가, 그런 시련들이 인생에 녹아들어 코미디로 승화되는 거죠. 괴로움이 많은 게 그게 재산이에요. 아이러니 하지만, 전 제 인생이 자랑스러워요.”

- 20112월호 고난은 나의 힘_ 엄용수의 다사다난 개그인생 30

 

 

 

2003년 열차에 치일 뻔한 어린이를 구한 뒤 발목을 크게 다쳤던 그가 끝내 다리를 절단했다. 수술한지 며칠 되지 않아 통증이 클텐데도 그런 내색은 전혀 하지 않았던 김행균씨와 아내 배혜순씨.

남편이 수술실로 들어간 뒤 기도하는 마음으로 수술이 무사히 끝나기를 기다렸어요. 그런데 수술시간이 당초 예정시간보다 길어지더군요. 비교적 간단한 수술이라고 들었는데 3시간이 넘도록 수술실의 빨간불이 꺼지질 않는 거예요. 걱정이 밀려오면서 마음이 초조해지기 시작했어요. 수술을 마치고 나오는 의사선생님께 왜 이렇게 오래 걸렸냐고 물었더니, 착한 사람이니까 예쁘게 해주려고 하다보니 오래 걸렸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통증이 너무 심해서 진통제를 맞지 않으면 밤잠을 설치기 일쑤인 김행균씨는 그래도 사고로 아이가 무사한 일이 얼마나 다행이냐고 말했다.

만약 그 아이도 다쳤다면 그 아이 걱정까지 해야하잖아요. 다행히 아이가 다치지 않았으니 내 몸하나 추스르는 것에만 신경쓰면 되지 않습니까. 아이가 밝고 건강하게 자라주기를 바랄 뿐입니다.”

- 200312월호 끝내 한쪽 다리 절단 수술받은 아름다운 철도원김행균

 

자동차 사고로 인해 전신의 55% 화상을 입었다.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살아나긴 했지만 무릎 위 온몸에 화상을 입은 탓에 곱디고운 얼굴이 더 이상 그녀의 것이 아니었다. 천만다행으로 뇌와 눈, 두발은 무사했다.

짧아진 여덟 개의 손가락으로 손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어요. 온전히 남은 엄지손가락만으로 생활하고 글을 쓰며 엄지손가락을 남겨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아마 독수리타법 경진대회가 있으면 일등은 따논 것이나 마찬가지일 거예요. 눈썹이 없어서 무엇이든 여과 없이 눈으로 들어가는 것을 경험하며 눈썹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 알게 됐고요. 오른쪽 귓바퀴도 다쳤는데, 귓바퀴가 귀에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한 배려였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건강한 피부가 얼마나 많은 기능을 하는지 알게 되었고요. 그나마 남겨주신 피부들이 건강하게 움직이는 것에 감사합니다.”

제 모습을 처음 봤을 때요? 낯설었죠. 멀리서 거울에 비친 모습을 봤는데 어색하고 그랬는데. 오히려 물러나면 더 힘들 것 같아서 낯선 나에게 손을 흔들면서 이야기했어요. ‘안녕, 이지선하고요. 거울 속의 저도 저에게 인사를 하더군요. 지금은 아주 가까이서 뚫어져라 봐요. 예전의 이지선도 저이고, 지금의 이지선도 저니까요.”

처음에는 어두운 밤 유리창이나, 밥 먹을 때 숟가락에, CD 케이스에 비치는 자신의 변한 모습에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이제는 익숙해졌다. 하지만 아이를 좋아하는 그녀가 아이들에게 다가갈 수 없음이 조금 서글픈 부분이다. 아이들이 놀라 피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터이니하지만 그녀는 얻은 것이 더 많다고 생각한다.

저를 잃음으로 저는 더 많은 사람을 가슴으로 안을 수 있게 되었어요. 누구나 크고 작은 아픔을 안고 살아가게 마련이잖아요. 제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도 그런 아픔을 나누고 그것이 치유받아야 할 아픔이라면 치유받도록 도와주는 일이에요.”

- 20036월호 화상 딛고 희망을 전파하며 온 국민을 울린 행복한 그녀 이지선

 

 

항암치료를 세 번쯤 하면 차라리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싶을 정도로 괴로워요. 모든 점막이 다 헐어버리니까 여기저기가 다 찢어지고 잘못되면 썩어 들어가고사는 거 같지가 않아요. 호리호리하고 마른 분들은 암이 뼈까지 들어가서 항암치료를 몸이 감당하지를 못하더라고요. 저는 뚱뚱했기 때문에 항암치료를 여덟 번을 하면서도 버텨낼 수 있었어요. 일생을 뚱뚱한 게 고민이었는데, 그땐 참 고마웠어요. 그렇게 긍정적인 마음으로 이겨냈죠. 다른 사람들은 항암 치료 전에 유서를 쓰고 들어간다는데, 저는 치료 마치면 뭘 먹을지 정해서 레스토랑 예약을 하고 들어갔어요(웃음). 저는 애들 때문에 살았어요. 또 이왕 살려면 잘 살아야 하잖아요. 3년 전 암 때문에 죽음의 위기에 섰을 때 돌이켜보니까,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고 어쩌고 하는 거 보다 애들 둘 낳은 게 제가 가장 잘한 일인 거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 아이들을 마저 잘 키워야겠다는 의욕으로 제가 살아났어요. 힘든 상황에 놓여있는 분들에게 자기 자신에게 잘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 세상에서 가장 잘난 사람은 나예요. 내가 건강하고 내가 행복해야 남편과 아이들, 부모님한테도 잘 할 수 있는 거예요. 행복이란 게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내가 살아있는 자체가 행복한 거죠. 누구든 잘할 수 있는 게 있잖아요? 거기에 포커스를 맞춰야죠.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면서 즐겁게 사는 게 곧 행복이죠.

- 20106월호 김진세의 인터뷰 긍정의 힘_ 암도 물리친 건반 위의 자부심 피아니스트 서혜경

 

 

  

솔직히 말하면 아프리카로 여행을 떠난다는 기분으로 출발했어요. 그런데 막상 도착해보니 이건 내가 생각했던 거랑 천지 차이 인 거예요. 나는 몰랐어요. 세상에서 굶어죽는 사람이 그렇게 만다는 걸. 처음에는 내가 섬기는 신을 원망했어요. 왜 아프리카를 만들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게 하냐고. 나 혼자서 신께 막 원망했어요. 근대 그 순간에 깨달음이 있더라구. 신이 나를 이곳으로 오게 한 이유를 그곳에서 찾았어요. 나는 남은 인생을 봉사하면서 살 거라고 생각했어요.내가 사람들한테 배고픈 아이들 좀 도와달라고 하면 돈이 없다고 해요. 근데 그건 거짓말이에요. 그건 돈이 없는 게 아니라 마음이 없는 거예요. 내가 말했잖아요. 백원이면 아이들이 배부른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다고. 근데 그 백원이 없다는 건 말도 안되죠. 또 사람들은 제가 부자가 되면 그때 불쌍한 사람들을 돕겠습니다라고 해요. 근데 그렇게 마음먹으면 평생 남을 돕지 못해요. 봉사는 남을 위한 게 아니라 나를 위한 거예요. 우리 죽을 때 아무것도 못 가져가요. 내가 이 세상에 살았다는 흔적을 남기는 게 바로 봉사예요.”

- 20045월호 전세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한 10년 세월 책으로 엮은 김혜자의 아름다운 행보

 

 

욕심으론 백 번 연습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죽기 살기로 대본을 외우거든요. 연기력을 평가받는 기준도 연습량에 있다고 봅니다. 촬영장에서 감정 하나 정리가 안된 상태에서 진행했다면 지금의 제 자리에 설 수 없었을 거예요.”

 

- 200411월호 가정과 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며 사는 김희애

 

 

 

 

멀었죠. 연기도 연기지만 전 잘하는 게 하나도 없어요. 연예인은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토크면 토크, 하나씩은 재주를 가지고 있는데 전 내세울 만한 장기가 없다는 게 늘 문제죠. 제가 왜 TV 토크쇼나 인터뷰를 기피하는 줄 아세요? 그게 다 끼가 없어서예요. 전 그냥 노력하는 수밖에 없어요. 그나마 제 연기의 90%는 노력에서 나온 거니까요.”

- 20033태극기 휘날리며돌아온 가을의 전설 원빈

 

 

나는 지금 나의 배변을 도와주거나 음식을 떠 먹여 주거나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몸을 움직여 주는 사람들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처음에는 콧물이 흐른다거나 소변을 보고 싶을 때, 일일이 미안하지만 이것 좀하면서 도움을 청한다는 것이 그렇게 괴로울 수가 없었죠. 내 자신이 참으로 싫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신뢰하게 되고, 또 내 스스로 할 수 있는 힘이 조금씩 생겨나면서부터 내 자신을 다시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 199610월호 슈퍼맨크리스토퍼 리브의 인간 승리 나는 반드시 일어난다

 

 

 

대학 시절 교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면 어느 자리를 가든 항상 두 번째로 하라고 하셨거든요. 모두가 우리에게 제일 먼저 하라고 할 때 좋다고 넙죽 받아들이지 말고 한 박자 기다렸다가, 제일 좋은 자리는 사회에 돌려주라던 말씀이 그때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어요. 그런데 25년 동안의 회사생활을 돌이켜보니 막상 제가 한 일이 없더라고요.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할 수 있는 일도 없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제가 사회적으로 많은 일을 한 줄 알았거든요. 대기업 부장이면 뭐해요. 아무리 돈을 많이 벌고 잘살아도 정말 절실히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없는데. 그때 회의를 느꼈어요.”

마음을 먹고 결정만 하면 할 일은 얼마든지 있다는 그의 신념은 불가능하게만 보이던 일들을 가능으로 바꿔놓았다.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자 하나만 빼라고 말한다.

많은 분이 망설이고 계시죠. 물론 남들보다 늦게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데에는 두려움이 따라요. 그런 두려움은 나의 이기심에서 시작될 수도 있어요. , 내 가족, 내 직장, 내 노후. 오로지 자신만을 위하던 삶에서 이제는 자를 빼보세요. 그러면 모두가 가족이고 모두의 직장이고 모두의 노후가 돼요. 우리는 받을 만큼 받았어요.”

- 20093월호 엘리트 샐러리맨에서 백의의 천사로 성신여대 간호학도 이준헌씨의 모두를 위한 도전

 

 

동네 야구와 프로야구의 차이 같은 거예요. 동네 야구는 친선을 위해 져줄 수도 있지만 프로야구는 언제나 마지막이라는 기분으로 공을 던지고 치죠. 한 번의 실수가 다음 트레이드에 직결되는 절박함, 그런 절박함으로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게 내가 생각하는 프로의식이에요. 또 연봉 1천만 원짜리 선수가 1억 원짜리 선수가 되기까진 허리의 통증을 참으며 남몰래 방망이를 휘둘렀던 숱한 밤들이 있었을 테고, 수천 번을 쳐도 되지 않던 이상적인 자세가 어느 순간 알아지는 행복감을 분명히 맛본 선수일 거예요. 나는 그 행복감들이 결국 프로를 만들어주는 거라고 믿어요.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죠.”

- 19992월호 1년 만에 방송가에 돌아온 인가 방송작가 송지나

 

 

 

 

사람은 누구나 위대해지고 싶다는 꿈이 있지요. 그 꿈 하나를 좇아 평생을 보내는 사람도 많고요. 그러나 그것은 착각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위대해질 수도 없고, 위대해지고 싶다고 해서 그 꿈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법도 없습니다. 주어진 여건 속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사람입니다.”

- 19855월 하순호 P73, 일본 진출에 성공하고 돌아온 조용필

 

 

머리가 좋은 것보다는 마음 좋은 게 좋구요. 마음 좋은 것보다는 손 좋은 게 좋고, 손 좋은 것보다는 발 좋은 게 좋다는 말이 있잖아요. 그저 머리로 생각하고 돕는 것과 직접 발로 뛰면서 남을 돕는다는 건 상당한 차이가 있어요.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위해 직접 봉사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는다는 건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 20018월호 서울소방서 최초의 화재진압 여성 소방관 박양지

 

 

제가 존경하는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이 있어요. 첫째 수도자 같을 것, 수도자의 삶을 닮을 것. 둘째는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할 것. 그 말이 지금의 저를 만들지 않았나 생각해요. 제 자신이 글을 쓰며 가장 추구했던 말이기도 하구요. 또 제가 좌우명으로 삼고 있는 말이 있습니다. ‘개미가 역사한다는 말. 개미는 조금씩 조금씩 일해서 집이 있는데, 성큼성큼 가는 코끼리나 사자는 집이 없죠. 개미처럼 꾸준히 일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 20051월호 꽃보다 아름다워로 제17회 한국방송작가상 수상한 노희경

   

 

 

전에 직장인 상대로 강의하면서도 그랬어요. ‘웬만하면 꿈을 갖지 마라. 정말 피곤하다. 꿈을 좇아서 사는 건요, 정말 힘들어요. 좌절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고. 말이 좋지 자신을 학대하는 거예요. 꿈을 가지면 대단히 힘든 일이 많이 생겨요. 방송 스케줄 마치고 영화사 가서 시나리오 쓰고머리가 깨질 거 같아. 그냥 헬렐레하면 좋아(웃음). 그래도 꿈은 갖고 살아야죠. 올해 마흔 아홉인데, 5, 6년 후에 감독하겠다는 꿈이 있어요. 그걸 위해서는 방송을 더 열심히 해야해요. 지칠 틈이 없죠. 또 버라이어티 일선에서 가장 오래 하는 코미디언으로 남고 싶어요. 영화감독 한 번 해서 저 친구 감독 참 잘하네그렇게 인정받고 싶고. 그런 것이 힘인 것 같아요.

독자 여러분들도 한번 좋아했잖아요, 그럼 영원히 좋아하세요. 중간에 바꾸고 그러지 말고(웃음). 같이 늙어가는 거니까, 옛날에 좋아했던 것을 계속 좋아하면서, 그렇게 살아야 행복한 거죠. 새것 나왔다고 확 달라지고 그러면, 남는 게 없어요(웃음). 일본에 이시하라 유지로라고 있어요. 탤런트 겸 가수죠. 홋카이도 오다로에 가면 그 사람의 생가가 있어요. 역에 내리면 그 사람 노래가 나와요. 그 사람 죽은 날은 와인이 20만 병이 팔려요. 그 사람이 와인을 좋아했대요. 팬들이 그 사람을 잊지 못하고, 그 사람이 죽은 날 같이 와인을 마시는 거죠. 멋있지 않아요? 우리는 활동 안하면 그냥 끝이야. 아웃이에요(웃음). 그 나라 사람들은 와인이 20만 병씩 팔릴 정도로 그 사람을 못잊는 거거든요. 그렇게 살아가는 것, 행복하잖아요. 낭만을 갖고 있어야 되는 거예요.”

- 20083월호 장기자 정기자의 도발 인터뷰_ 꿈꾸는 사람의 외로운 질주 이경규

 

마음을 부드럽게 쓰도록 노력하세요. 이것이 본심이므로 마음을 부드럽게 쓰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거친 세상을 거칠게 살면 충돌밖에 없습니다. 부드럽게 대해야 합니다. 지금은 모성이 필요한 때입니다. 부드러운 마음은 삶의 중심이요, 바로 제 정신입니다.”

- 198711월 상순호 P98, 법련사에서 가을 설법 펼친 법정스님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엄마는 엄마고, 딸은 딸이더라고요. 우리 딸도 결혼하고 아이 낳아 엄마가 됐는데도, 아직도 딸에게 전화가 오면 가슴이 철렁해요. 수화기 너머로 엄마!’하는 목소리가 들리면 혹시 무슨 일이 있나 걱정부터 하는 거죠. 엄마 마음은 다 똑같잖아요. 좋은 일은 없더라도 별 탈 없이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요.”

그녀의 어머니는 묵묵히 희생하며 가족을 보살피는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였다. 자신의 인생을 챙기지 않고 오직 자식만을 위해 희생하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던 한편 언제나 가슴아프고 죄스러웠다.

내가 밥 잘 먹고 다니는지가 우리 엄마의 가장 큰 걱정거리였어요. 항상 저한테 하시는 첫 말씀이 밥 먹었니?’였어요. 돌아가시기 전에도 우리 애들이 갔더니 니 어미, 밥 먹고 나갔냐?’라고 물어보셨대요. 그게 아마 우리 어머니들이 할 수 있는 자식에 대한 애정표현이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 시절은 밥먹고 살기 힘들었으니까. 어렸을 때 내 맘에 안 들거나 해달라는 것 안해주면 밥 안먹고 떼썼거든요. 애물단지였죠. 지금 생각하면 엄마한테 그게 제일 미안해요.매정한 딸이었죠. 우리 어머니가 1년 정도 편찮으시다가 돌아가셨어요. 친정에 가서 엄마, 좀 어떠세요?’하며 앙상하게 마른 손을 잡아드리고 안아드리면 그렇게 좋아하셨어요. 생전 딸한테서 그런 걸 못 받으셨던 거예요. 품을 꼭 안아드리며 엄마 사랑해하면 무척 행복해하시는데, 그 전에는 왜 그렇게 못했는지. 너무 후회스러워요.”

손숙은 인터뷰 하는 기자에게 노 기자는 꼭 그렇게 하세요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 20089월호 손숙 어머니를 말하다

 

 

예전에는 거지한테 한 푼 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테레사 수녀가 죽어가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씻기고 먹이는 것을 보면서 저것이 세상을 바꾸는데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결혼을 하고 엄마가 돼서 일상 속으로 직접 들어가보니까 세상일이라는 게 작은 것들이 하나씩 모여서 만들어져 가는 거란 깨달음이 생기더라고요. 뒤에서 앉아만 있을 것이 아니라 직접 해봐야겠다 싶었어요. 지금 노조 여성부 차원에서 사내 탁아소 건립 문제를 추진하고 있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제가 나서야 하는 일이죠. 누군가 나서면 분명 달라질 거라 믿기 때문에 힘들어도 시간 쪼개가며 열심히 부대끼고 있습니다.”

- 200312월호 8년 만에 제자리 찾은 ’FM 영화음악‘ DJ MBC 정은임 아나운서